녹차의 맛을 떠올려 보자. 담백하고 슴슴한 맛, 조용한 풀의 내음 녹차는 특별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강하다. 이 영화 속에는 딱 그런 녹차의 맛 같은 가족이 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어디에도 없을 그런 가족 구성원이 모여 작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만든다.
<녹차의 맛> 기본 정보
- 감독:이시이 카츠히토
- 출연: 반노 마야, 사도 타카히로, 아사노 타다노부, 데즈카 사토미, 미우라 토모카즈, 츠치야 안나, 안노 히데아키
- 개봉: 2006
- 장르: 코미디, 드라마
- 러닝타임: 142분
<녹차의 맛> 시놉시스
영화 <녹차의 맛>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하지메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된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그녀를 보며 하지메의 이마에서 기차가 나와 그의 머리에 구멍을 남기고 만다. 이렇게 과감한 CG로 시작되는 <녹차의 맛>은 영화 안에서 다양하고 과감한 CG 묘사를 선보이며 코믹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선보인다.
하지메의 동생 사치코는 하지메보다 한술 더 뜬다. 사치코는 거대한 자아가 자꾸만 자신을 보아서 괴로운 귀여운 초등학생이다. 사치코는 어느 날,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거대 자아’를 없애기 위해서 숲속에 버려진 놀이터에 가서 혼자 철봉 돌기를 연습한다. 철봉 돌기를 성공하면 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자아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녹차의 맛>은 줄거리가 한 손에 잡히는 영화가 아니다. 아니, 아예 줄거리가 애초부터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림같이 펼쳐지는 녹색 빛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자리 잡은 가족의 집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과 그들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이 각기 코믹하고 기이한 상황에 놓이는 모습들이 연출된다.
영화에서 하지메의 가족 구성원은 할아버지, 아빠, 엄마, 삼촌, 하지메와 사치코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어디에다 있을 법 하지만 한편으론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가족이다.
할아버지는 시종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빠는 가족들을 앉혀놓고 최면을 걸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엄마는 사치코가 학교에 빠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메는 새로 찾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분투한다. 백수일 것 같았던 삼촌은 반전으로 프로 음악 엔지니어다. 유독 말이 없는 사치코는 거대한 자아와 싸우고 있다. 평범한듯하지만 특별한 이 가족에서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는 건 사치코이고 반대로 가장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다.
이런 각각의 등장인물이 하루하루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을 영화는 담아내고 있다.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출연하기도 한다.
총평
<녹차의 맛>은 러닝타임 146분으로 그리 짧지 않은 영화지만 줄거리가 없어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무언가 손에 쥐려고 하기보다는 손에 힘을 빼고 놓아주면서 보는 영화다.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가 이어지는 영화지만 <녹차의 맛>이 마음에 남는 건 푸르게 펼쳐지는 풍경과 영화의 마무리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툇마루에 앉아 있던 사치코는 할아버지의 방을 들여다보고 그곳에서 죽어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마치 즐겁다는 듯한 느낌으로 죽어있는 할아버지를 보내고 가족들은 그의 방에 들어와 물건들을 꺼내보다 스케치북들을 발견한다. 각자 가족들의 이름이 적힌 스케치북에는 만화가였던 할아버지가 그린 각자의 소중한 순간들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져 있다. 가족들은 그림 속에서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만나며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철봉 돌기를 꾸준히 연습한 사치코는 드디어 기술을 파악하고 철봉 돌기에 성공한다. 가볍게 한 바퀴를 돌자 땅속에서 거대한 자아가 나와서 하늘로 올라간다. 다시 한번 철봉 돌기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숲을 나서는 사치코를 보면서 무언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사치코의 철봉 돌기처럼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전하면 언젠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자아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별것 아닌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마음 한편이 훈훈해져서 끝나는 영화가 <녹차의 맛>이다.